한국의 장승과 솟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에 대해서 알아보자. 전통적인 한국 마을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길목이나 마을 입구에 우뚝 솟은 나무 기둥 위로 인자하거나 위엄 있는 얼굴이 새겨진 장승이 서 있고, 그 옆에는 기다란 장대 위에 새 한 마리를 얹어놓은 솟대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이들은 단지 조형물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염원과 두려움, 믿음과 공동체 의식을 상징하는 수호신의 역할을 해온 존재들이다.
장승과 솟대는 단지 신앙 대상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고, 사람과 자연을 조화롭게 연결해주는 매개체였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귀신, 액운, 질병, 재앙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고, 풍년과 복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받아내며 수백 년을 버텨왔다.
이 글에서는 한국 전통 마을의 수호신으로 기능해온 장승과 솟대의 유래, 형태, 상징성, 그리고 오늘날에 남아 있는 문화적 의미를 깊이 있게 살펴보며, 이들이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의 정체성과 공동체 정신을 이야기하는 상징임을 조명하고자 한다.

1. 장승의 유래와 역할: 나무와 돌에 깃든 신의 형상
1) 장승의 기원과 명칭
장승(長栍)은 본래 고려 이전부터 존재했던 민간신앙의 산물로,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세워 경계와 수호의 기능을 했다. ‘장승’이라는 말은 본래 ‘장생’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으며, 지역에 따라 벅수, 벅시, 촛대, 장성, 당목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고려시대 불교의 유입과 함께 사찰 입구에도 석장승이 세워지며, 불교와 민속신앙이 융합된 수호신 형태로 발전했다.
2) 장승의 형태와 조각 방식
장승은 주로 나무 또는 돌로 제작되며, 그 위에 위엄 있는 얼굴이 조각된다.
- 나무 장승: 오래된 느티나무, 참나무 등을 사용해 깎고 불로 그을려 방수 효과를 높였다.
- 석장승: 화강암이나 점판암 등의 돌을 다듬어 인물상을 새겼다.
- 얼굴: 남성형은 무서운 표정으로 귀신을 쫓고, 여성형은 인자한 얼굴로 복을 기원한다.
- 몸통에는 이름이나 직함이 새겨진다. 예: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동제당지신’ 등.
이 이름들은 단지 문구가 아니라, 이 장승이 마을을 대표하여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신의 직책’이었다.
3) 장승의 기능과 민속적 역할
- 경계의 표시: 마을과 마을 사이, 혹은 고을의 입구를 알리는 이정표 역할.
- 수호신 기능: 악귀나 잡귀의 출입을 막고, 마을의 질병과 재난을 차단.
- 기복신앙의 대상: 장승 앞에 음식을 차리고 제를 지내며 가정의 안녕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
- 사회 통합의 상징: 마을 사람 모두가 공경하고 참여하는 공동의 신앙 대상.
장승은 말이 없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 앞에서 두려움과 경외, 친근함과 의지를 동시에 느끼며 일상을 살아갔다.
2. 솟대의 의미와 상징: 하늘로 전하는 염원의 기둥
1) 솟대란 무엇인가?
솟대는 긴 나무 장대 끝에 오리를 깎아 얹어놓은 형태의 민속 조형물로, 주로 마을 제당 옆이나 장승 옆에 함께 세워졌다.
‘솟다’에서 비롯된 이름처럼,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형상은 인간의 소망과 하늘의 기운을 연결하는 통로였다.
- 장대는 소나무, 대나무, 참나무 등으로 제작되며,
- 꼭대기에는 보통 나무로 깎은 오리나 기러기 한 쌍을 얹는다.
- 장대는 홀수로 세우는 경우가 많으며, 수에 따라 마을의 규모나 기운을 상징하기도 한다.
2) 오리의 상징성과 기능
솟대 꼭대기의 오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생명과 다산, 평화, 물의 정령으로 여겨졌다.
- 오리는 물과 땅, 하늘을 넘나들 수 있는 존재로, 신과 인간의 중재자로 기능.
- 짝을 이뤄 다니는 특성에서 부부 화목, 자손 번창의 기원이 담긴다.
- 일부 지역에서는 오리 대신 닭, 봉황, 학이 얹히기도 하며, 이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른 상징 체계를 반영한다.
3) 솟대의 의례와 축제
- 마을에서는 정초나 봄 농사 전, 제를 지내며 솟대에 복을 빈다.
- 풍물을 울리며 솟대 아래서 제를 올리는 ‘솟대굿’은 마을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중요한 의례였다.
- 제를 지내는 날에는 솟대 주변에 음식, 막걸리, 떡을 놓고 온 마을이 참여해 공동체 의식을 확인한다.
솟대는 결국 기원을 하늘로 올리는 기둥이자, 마을의 영적인 중추였다.
3. 장승과 솟대의 비교와 공통점
항목 | 장승 | 솟대 |
---|---|---|
소재 | 나무, 돌 | 나무, 장대 |
위치 | 마을 입구, 고갯마루 | 마을 제당 옆, 당산 주변 |
형태 | 인물 얼굴 조각 | 장대 + 새 조형물 |
기능 | 수호, 경계, 악귀 방어 | 복기원, 기후제, 다산 기원 |
상징 | 남녀 신격화, 신의 얼굴 | 하늘로의 연결, 생명의 상징 |
의례 | 장승제 | 솟대굿 |
장승이 ‘땅’을 지키는 수호신이라면, 솟대는 ‘하늘’에 기원하는 전달자 역할을 했으며, 이 둘은 민간 신앙에서 ‘지신’과 ‘천신’을 아우르는 구조를 이뤘다.
4. 조선시대 기록과 예술 속 장승·솟대
조선 후기 민화와 풍속화에서도 장승과 솟대는 자주 등장한다. 김홍도의 풍속화에는 마을 입구 장승이 자연스럽게 배경으로 묘사되며, 이는 일상 속에서 이들이 얼마나 익숙한 존재였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동국세시기』, 『택리지』, 『연행록』 등 조선시대 문헌에도 장승과 솟대에 대한 언급이 있으며, 사행길에 오른 사신들이 국경 지대의 장승을 넘어가며 새로운 세상에 들어섰다는 인식을 표현하기도 했다.
5. 현대 사회에서의 변모와 문화적 계승
오늘날에는 장승과 솟대의 기능이 실제 수호신에서 상징적 전통문화재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은 우리에게 말없이 많은 것을 전해준다.
- 마을 축제: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장승제, 솟대제는 지역 공동체 문화의 상징으로 재탄생.
- 공공 조형물: 마을 입구, 도로변, 공원 등에 설치된 장승과 솟대는 향토성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디자인 요소로 활용됨.
- 학교나 마을의 상징: 초등학교 교정이나 시·군청 마당에 세워진 장승은 지역 역사와 전통을 이어주는 교육적 매개체 역할.
- 장승 제작 체험과 민속 축제를 통해 어린이와 관광객들이 전통을 직접 보고, 만지고, 이해하는 기회가 마련되고 있다.
이는 장승과 솟대가 더 이상 신앙의 대상이 아닐지라도, 그 정신이 우리 삶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다.
6. 결론: 침묵 속에서 마을을 지켜낸 존재들
장승과 솟대는 입이 없지만 말이 많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이정표이자 경계, 수호신이자 소망의 표상, 공포와 믿음을 동시에 주는 얼굴이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도시의 속도에만 몰두하지만, 장승과 솟대는 한 자리에 서서 바람과 해, 사람과 시간, 조상과 후손을 연결해왔다.
오늘날에도 마을 어귀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다면, 잠시 멈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쩌면 우리는 그들을 통해 공동체의 의미, 자연과 더불어 사는 방식, 그리고 오래된 미래의 삶의 지혜를 다시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장승과 솟대는 그렇게 오늘도 말없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