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의 삼계탕과 중복의 이열치열 문화에 대해서 알아보자. 7월 무렵, 한반도는 장마가 물러가자마자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다. 사람들은 기운을 잃고 입맛을 잃으며, 몸은 땀에 젖어 축 처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으레 달력을 들여다보며 초복, 중복, 말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복날은 단순히 ‘덥다’는 계절적 의미를 넘어, 오랜 역사와 풍속이 결합된 전통적인 절기이자 생활의 지혜가 깃든 문화다. 특히 초복에는 삼계탕, 중복에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말과 함께 보양식을 찾는 풍속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초복과 중복의 유래와 문화적 의미를 중심으로, 삼계탕이 대표 보양식으로 자리 잡은 배경, 이열치열 철학이 현대 한국인의 여름 풍속 속에 어떻게 살아 있는지를 짚어본다.

1. 이열치열 문화 복날의 유래: ‘삼복’이라는 이름에 담긴 계절의 흐름
1) 삼복의 정의와 계산법
삼복은 음력 6월과 7월 사이에 위치하는 세 번의 절기로, 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으로 나뉜다. 이 삼복은 기후상 1년 중 가장 더운 기간이며, 이 시기를 통해 몸을 보호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식문화와 풍속이 발전했다.
삼복은 음력으로 계산되는 간지(干支) 체계에서 ‘경(庚)’일이 드는 날로 정해지는데,
- 초복: 하지(夏至) 이후 세 번째 경일
- 중복: 네 번째 경일
- 말복: 입추(立秋) 이후 첫 번째 경일
이 간지 계산법은 농경사회에서 계절의 흐름을 세밀하게 파악하고, 인간의 몸도 자연의 흐름에 맞추려는 지혜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2) 복날의 상징적 의미
복(伏)은 ‘몸을 낮추다’, ‘엎드리다’는 뜻으로, 더위 앞에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생명력을 회복하고자 했던 태도를 반영한다. 삼복은 단순히 덥다는 계절적 표현이 아닌, 사람이 자연 앞에서 겸허해지고 그 안에서 이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했던 전통 철학의 실천이다.
2. 초복과 삼계탕: 한 그릇 속의 건강 철학
1) 초복의 풍속과 의미
초복은 삼복 중 가장 이른 날이며,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이다. 이때 사람들은 더위로 인해 기력이 떨어지기 전, 미리 몸을 보충하여 여름을 버티기 위한 준비의 의미로 보양식을 찾았다.
고문헌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초복에 닭이나 개고기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단백질 보충과 기력 회복을 중시한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2) 삼계탕의 기원과 발전
삼계탕은 닭 한 마리의 뱃속에 찹쌀, 인삼, 마늘, 대추 등을 넣고 푹 고아 만든 음식이다.
- 고려~조선 시대에는 현재와 같은 형태는 아니었지만, 계삼탕(鷄蔘湯), 인삼백숙과 같은 형태의 보양식이 존재했다.
- 삼계탕이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 한방 재료와 전통적인 백숙이 결합하며 오늘날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삼계탕은 단백질, 미네랄, 인삼의 사포닌 등 무더위로 인해 잃기 쉬운 체력과 면역력을 보완해주는 식품으로 과학적으로도 효능이 인정된다.
3) 초복에 삼계탕을 먹는 문화의 확산
오늘날 한국에서는 초복이면 전국의 삼계탕집에 긴 줄이 늘어서는 풍경이 자연스럽다. 기업도 이 날을 겨냥해 마케팅을 펼치고, 관공서나 군대에서도 단체 급식으로 삼계탕을 제공한다.
이러한 문화는 단순한 음식의 유행이 아니라, ‘입으로 전해지는 건강법’이라는 민속적 정체성과 계절 감각의 복합체로 이해할 수 있다.
3. 중복과 이열치열: 불로 불을 다스리다
1) 중복의 시기와 신체 변화
중복은 삼복 중 가장 더운 시기로, 몸이 이미 지쳐 있는 상태에서 가장 높은 기온이 겹치는 시점이다. 이 시기를 전후로 열사병, 식욕부진, 무기력증 등이 심해지며, 이에 따라 중복에도 보양식 문화가 발달했다.
2) ‘이열치열’의 사상적 뿌리
이열치열(以熱治熱)은 중국 고대의 의학서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 비롯된 이론으로, ‘열을 다스리기 위해 열로써 다스린다’는 원리다. 즉, 찬 음식이나 냉방으로 체온을 떨어뜨리기보다는, 따뜻한 음식과 땀을 통해 몸 안의 기운을 밖으로 발산시키고 기를 순환시켜 오히려 건강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철학은 한국 고유의 건강관과도 맞물리며, 중복 무렵에는 더 뜨거운 음식—탕, 찜, 국, 찌개류가 더 많이 소비된다.
3) 중복에 즐긴 다양한 보양식
삼계탕 외에도 중복을 중심으로 다양한 음식들이 전통적으로 사랑받았다.
- 추어탕: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한 미꾸라지로 만든 탕으로, 더위에 지친 기력을 회복하는 대표적 보양식이다.
- 장어구이: 기름기와 영양소가 풍부해 중복 무렵 체력 증강 음식으로 인기가 높다.
- 쇠고기탕, 갈비탕, 보신탕 등 육류 중심의 탕들도 이열치열의 철학에 따라 널리 먹혔다.
4) 땀을 흘리는 문화와 온돌, 찜질방의 연계
중복에는 뜨거운 방에서 땀을 내며 여름을 이긴다는 풍습도 존재했다. 전통 한옥의 온돌방에서 더운 숯불을 피워 땀을 빼는 방식은, 오늘날의 찜질방 문화와도 연결된다.
이열치열은 음식을 넘어, 공간과 몸의 움직임 전체로 확장된 전통적 건강 철학이었다.
4. 삼복 음식의 사회적 의미와 공동체의 연대
1) 나눔과 돌봄의 문화
복날의 보양식은 단지 개인의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식사였다.
- 집안의 노인에게 삼계탕을 먼저 대접하거나,
- 몸이 약한 이웃에게 보신탕이나 추어탕을 나눠주는 풍속은,
- 함께 더위를 이기고 무사히 가을을 맞이하자는 공동체적 유대감의 표현이었다.
2) 복날 음식과 노동력 회복
조선 시대 농민들에게 삼복은 가장 고된 시기였다. 한여름의 논매기, 수확 준비, 바쁜 농사일이 겹치던 때에 복날 보양식은 필수적인 영양 보충의 기회였다.
- 관청이나 향교에서는 공공 급식 형태로 복달임을 실시했으며,
- 양반가에서는 하인과 머슴에게도 복날만큼은 삼계탕이나 백숙을 나누는 관례가 존재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 기업의 복날 점심 제공, 군대의 삼계탕 배식 등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직장과 조직 내 연대의 표시로서 음식이 역할을 하는 문화가 여전히 살아 있다.
5. 결론: 초복과 중복, 계절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의 상징
초복의 삼계탕과 중복의 이열치열 풍속은 단지 한 끼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이 계절에 맞서기보다 그 속에서 스스로를 돌보고 조화롭게 살아가려는 전통의 지혜를 상징한다.
땀을 기꺼이 흘리고, 열로 열을 다스리며, 소박하지만 정성스런 한 그릇을 나누는 문화 속에는 자연에 순응하며 건강을 지키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스며 있다.
현대의 우리는 냉방기와 편의식 속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복날이면 삼계탕을 찾고 땀을 흘리는 음식을 그리워한다. 그것은 단순한 관습이 아니라, 삶과 계절을 연결하는 기억의 흔적이며,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오랜 경험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복날은 여름을 견디기 위한 통과의례이자, 한국인의 몸과 마음이 계절과 맺는 오래된 약속이다. 그 약속은 오늘도 따뜻한 뚝배기 위에서, 식당의 붐비는 대기줄 안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