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직업별 월급, 공무원부터 상인까지 수입 비교를 주제로 이야기 해보자. 조선 시대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지만, 신분에 따라 정해진 직업만 종사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양반 계층이라도 벼슬을 하지 못한 경우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해야 했으며, 평민들도 관직에 진출할 기회가 있었다. 천민이나 노비들도 노동을 통해 돈을 벌 수 있었고, 상업이 발달한 후기에는 신분을 넘어 부를 축적하는 경우도 등장했다.
이 글에서는 조선 시대 주요 직업들의 월급과 경제적 수준을 비교하여, 당시의 사회 구조와 경제적 현실을 살펴보고자 한다. 공무원(관료), 군인, 농민, 상인, 장인, 그리고 기생과 천민들의 수입까지 분석하여 조선 시대의 직업별 경제 상황을 조망해본다.

1. 조선 시대 직업별 월급: 조선 관료들의 녹봉(祿俸) 제도
조선 시대 공무원(관료)들은 녹봉(祿俸)이라는 월급을 받았다. 녹봉은 신분과 직위에 따라 차등 지급되었으며, 현물(쌀)과 일부 화폐(동전)로 지급되었다.
1) 관료(문관·무관)의 녹봉 체계
조선의 관료는 18품계로 나뉘었으며, 녹봉도 직위에 따라 달랐다.
품계 | 직책 예시 | 녹봉(연간) |
---|---|---|
정1품 |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 쌀 300석 + 기타 수입 |
종1품 | 판서, 대제학 | 쌀 200석 |
정2품 | 참판, 대사헌 | 쌀 100석 |
종2품 | 참의, 승지 | 쌀 80석 |
정3품 | 부사, 대사간 | 쌀 60석 |
종3품 | 동지사, 공조참의 | 쌀 50석 |
정4품 | 목사, 승문원 교리 | 쌀 40석 |
정5품 | 현감, 군수 | 쌀 30석 |
정6품 | 찰방, 사관 | 쌀 20석 |
정7품 이하 | 지방 관료, 교서관 관원 | 쌀 10~15석 |
- 쌀 1석(約 144kg)의 가치는 대략 현재 200만 원 수준으로 추정할 수 있다.
- 영의정(정1품)은 연봉으로 쌀 300석(약 6억 원 상당)을 받았으며, 정5품 군수는 약 30석(약 6천만 원 수준)의 녹봉을 받았다.
- 녹봉 외에도 각 지방의 수입(이권), 선물, 부수입이 있었으며, 고위직일수록 공식적인 월급보다 실제 소득이 많았다.
2) 군인(무관)의 수입
조선의 군인들도 녹봉을 받았지만, 무과 출신 장교들은 문관보다 적은 녹봉을 받았다.
- 정3품 장군급: 쌀 50석
- 정5품 대장급: 쌀 25~30석
- 하급 장교(정7품 이하): 쌀 10~15석
군졸들은 녹봉 외에 군량미와 부수적인 보조금을 받았지만, 경제적으로 매우 열악했다.
2. 조선 시대 직업별 월급: 농민과 자영업자들의 경제적 현실
1) 농민(전호, 자작농)의 수입
농민들은 대체로 소작농(전호, 佃戶)과 자영농(자작농, 自作農)으로 구분되었다.
- 소작농(전호):
- 경작한 곡물의 50~70%를 지주에게 세금으로 납부..
- 가뭄이나 수해가 발생하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 자영농(자작농):
- 자기 땅을 경작하여 연간 20~30석 생산 가능.
- 실질적인 연봉은 약 2,500~3,000만 원 수준.
2) 상인의 수입
조선 전기에는 상업이 억제되었지만, 후기에는 상업이 발달하면서 큰 부를 축적하는 상인들이 등장했다.
특히, 개성상인이나 의주상인 같은 국제무역 상인은 어지간한 정승보다도 많은 재산을 축적했다.

4. 조선 시대 직업별 월급: 장인과 기술직 노동자의 수입
장인(匠人)들은 주로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장(工匠)에서 일하거나, 민간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했다.
- 도자기 장인(경기도 광주 분원 등): 왕실 납품을 하면 더 높은 수익 가능
장인은 기술력이 뛰어나면 부를 축적할 기회가 있었으며, 일부는 상인과 결합하여 신흥 부유층이 되었다.
5. 조선 시대 직업별 월급: 기생과 천민의 경제적 현실
조선 시대 기생과 천민들도 일정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으며, 경우에 따라 높은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 기생(妓生):
- 공식적인 급여(쌀 5~10석) 외에도 부유한 손님에게서 후원금을 받았다.
- 유명한 기생은 한 해 50~100석 이상의 수입을 올릴 수도 있었다.
- 천민과 노비:
- 노비는 원칙적으로 급여를 받지 않았지만, 노비전(奴婢田) 경작이나 부업을 통해 수익을 올렸다.
- 일정한 경제력을 갖춘 공노비(公奴婢)는 연간 5~10석 정도를 모을 수 있었다.
6. 결론: 조선 시대 직업별 월급 격차와 사회 구조
조선 시대 직업별 소득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 관료와 상위 상인(거상)은 상당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 농민과 군졸은 가장 경제적으로 열악했으며, 기후 변화나 전쟁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 기술직(장인)과 일부 기생은 능력에 따라 높은 수입을 올릴 수도 있었다.
- 조선 후기에는 상업이 발달하면서 상인의 부가 증가했고, 신분을 초월한 경제적 이동이 가능해졌다.
결국 조선 시대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존재했으며, 신분과 직업에 따라 경제적 격차가 컸다. 하지만 조선 후기로 가면서 상업과 기술이 발전하며 일부 계층에서는 신분을 뛰어넘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