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조선소와 선박 기술, 실제로 일본보다 앞섰을까?를 주제로 글을 써보고자 한다. 조선이라는 국명 자체가 ‘조선(造船)’과 같은 발음을 지니고 있다는 점은 우연치고는 흥미롭다. 물론 실제 국호와 선박 제조와는 무관하지만, 조선은 실질적으로 바다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다. 조선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왕조는 바다를 국가의 방어선이자 생명선으로 인식했고, 이에 따라 조선소를 운영하며 선박 건조 기술을 축적해 나갔다.
한편, 가까운 이웃인 일본 역시 도서 국가라는 특성상 선박 기술과 해상 교통, 해양 무역에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통적으로 바다를 적극 활용한 나라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조선의 선박 기술은 실제로 일본보다 앞섰던 것일까? 단순히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과 판옥선을 내세운 해전의 승리만으로 이를 평가하는 것은 부족하다.
이 글에서는 조선의 조선소 운영 체계와 선박 기술의 구체적 수준, 일본의 동시대 기술력과의 비교, 그리고 실제로 어느 쪽이 더 앞선 기술력을 갖고 있었는지를 역사적 자료와 기록을 통해 분석하고자 한다. 바다를 건너 서로를 마주하던 두 나라 사이, 기술력이라는 무기는 어떤 위력을 발휘했는가.

1. 조선의 조선소 운영 체계
1) 국가 주도형 조선소 운영
조선왕조는 선박 제조를 단순한 물자 생산의 범위를 넘어,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전략산업으로 인식했다. 이에 따라 전국에 주요 조선소를 설치하고, 관리를 통해 선박 건조를 직접 지휘했다.
- 대표적인 조선소: 한강 인근의 한강조창, 경상도의 삼도수군 조선소, 전라도의 통제영 조선소
- 전함(군선)과 민간선박을 구분하여 운영하되, 전시에는 민간 선박도 징발 가능
- 중앙에서 형조·공조·병조가 선박 건조 명령을 내리고, 지방 수군에서 제조 집행
특히 임진왜란 이후에는 선박 건조 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선박 기술자(선장匠)들을 국방 핵심 인력으로 대우하기도 했다.
2) 표준화된 선박 제작법의 발전
- 『경국대전』과 『선전의(船典儀)』 등 공식 문서에는 선박 크기, 재료, 건조 방식, 인력 배치 등이 체계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 이는 일본이 목수의 개인적 노하우에 의존하던 제작 방식과는 대조된다.
- 조선은 선체의 구조를 무게 중심으로 설계해 파도에 강하고 안정적인 항해가 가능한 구조를 개발했다.
2. 조선의 대표적 선박 기술
1) 판옥선(板屋船)
조선의 대표적 전투선인 판옥선은 16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 상하 2층 구조로, 위층은 궁수·총수용, 하층은 노 젓는 공간
- 다층 구조의 안정성과 높은 갑판, 견고한 외벽은 일본의 단층 전투선보다 방어력이 뛰어남
- 선체에 철못 대신 목재 맞춤 방식(무쇠 사용 최소화)을 써 부식 문제 최소화
실제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 수군은 노출된 병력 구조로 인해 판옥선에 비해 많은 피해를 입었다.
2) 거북선(龜船)
- 1592년 이순신 장군이 실전에 투입한 전 세계 최초의 철갑선으로 평가받는다.
- 외부는 철판과 철못으로 보호, 내부는 화포와 총통 설치
- 위에는 뾰족한 못을 설치해 적군의 승선을 방지
- 선두에 용머리 형상의 포구를 달아 심리적 효과를 유도
거북선의 설계는 전 세계적으로도 선도적인 방어형 전투선 모델이었으며, 이후의 해상 전투 전술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3) 포선(砲船)과 군선(軍船)
조선은 화포의 강국답게, 선박에 포를 장착하여 공격력이 높은 선박을 따로 개발하였다.
- 비격진천뢰, 화차 등 무기 장착 가능
- 군선의 경우 속도보다 병력 운송과 화력 제공에 중점을 둔 구조
이는 일본이 백병전에 치중한 선박 구성과 명확히 다른 전략적 방향이었다.
3. 일본의 선박 기술과 구조적 특징
1) 단층 구조와 빠른 기동성
일본의 전통적인 전투선은 세키바네(関船), 아타케부네(安宅船) 등이 있었는데, 대부분 단층 구조에 활과 창을 중심으로 한 백병전을 염두에 둔 구조였다.
- 빠른 속도와 조작성은 뛰어났으나, 판옥선과의 정면 교전에서 방어력 부족
- 무기를 실을 수 있는 공간이나 갑판의 안정성은 조선 선박에 비해 떨어졌다
2) 조선 기술의 일본 전파
임진왜란 이후 일본은 조선의 조선술과 선박 구조를 모방하거나 자국화하려는 시도를 했다.
- 실제로 에도 시대의 일부 선박은 이순신 장군의 판옥선 설계를 참고한 구조로 건조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 일부 조선 장인이 일본에 끌려가 선박 건조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는 조선 선박 기술의 우수성이 일본에서도 인정받았음을 반증한다.
4. 국제 해양 기술 흐름과 조선·일본의 위치
1) 서구 해양 기술과의 비교
조선과 일본 모두 대양 항해에는 소극적이었고, 내해 중심의 선박 기술이 발달했다. 그러나 조선은 국방 목적의 선박 구조 최적화에 집중했고, 일본은 상업과 항해용 선박을 다양하게 발전시켰다.
- 조선은 화포 기술과 방어 구조는 뛰어났지만, 항해 거리와 속도에서는 제한적
- 일본은 에도 후기 들어 네덜란드와의 교류를 통해 서양식 선박 기술을 부분적으로 흡수
따라서 선박 기술력 자체로 보면 조선은 전투 및 구조적 안정성, 일본은 상업적 운송과 기동성 면에서 각각 특화되었다.
5. 결론: 조선의 선박 기술은 일본보다 앞섰는가?
조선의 선박 기술은 적어도 국방·군사 목적에서는 일본보다 명백히 우수했다. 판옥선과 거북선은 그 구조와 전략, 내구성 면에서 일본의 단층 선박보다 뛰어났으며, 실제로 임진왜란 당시 수적 열세에도 조선 수군이 해전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이었다.
또한 조선은 조선소를 국가가 직접 운영하고 선박 건조 기술을 문서화하며 계승하는 체계적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장인 개인의 기술에 의존했던 일본보다 앞선 관리 체계를 보유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상업적, 국제 항해 기술 측면에서는 조선이 다소 보수적이었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선박이 단순한 교통 수단을 넘어 국방과 전략의 중심이던 시대, 조선의 선박 기술은 당대 동아시아에서 가장 구조화된 해군력을 뒷받침한 토대였으며, 일본보다 앞섰다는 평가에 손색이 없다.
바다 위의 전장은 단순히 수면 아래 무기를 감춘 곳이 아니었다. 조선은 선박 그 자체를 무기로 만들었고, 기술력과 체계를 무기로 삼아 전쟁을 이겨냈다. 그리고 그 기술은 지금도 거북선과 판옥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조선의 힘과 지혜를 전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