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국장과 왕릉 문화, 왕들의 장례 절차에 대해 알아보자. 조선 시대의 왕은 생전에 국가를 다스리며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지만, 그들의 죽음 또한 국가적인 행사로 거행되었다. 왕의 장례식, 즉 국장(國葬)은 단순한 가족의 애도 의식이 아니라, 조선 왕조의 질서를 유지하고 왕권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중요한 절차였다. 국장은 철저한 유교적 예법에 따라 진행되었으며, 여러 단계의 복잡한 절차를 거쳐 왕을 위한 영원한 안식처인 왕릉(王陵)으로 이어졌다.
조선 왕실은 국장을 통해 왕의 위엄을 유지하고, 백성들에게 충성과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왕릉을 조성하면서 자연과의 조화를 고려한 독창적인 배치 방식을 사용하여 조선 왕릉은 오늘날까지도 한국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다.
이 글에서는 조선 왕들의 국장 절차와 왕릉 문화가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철학과 규범이 반영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조선의 국장(國葬), 왕의 장례 절차
조선 시대 국장은 단순한 장례 절차가 아니라, 왕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조선 왕조의 통치 이념을 반영하는 국가적인 행사였다.
1) 왕의 승하(崩御)와 조정의 반응
왕이 승하하면 이를 ‘붕어(崩御)’라고 하며,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 승하 선언: 왕이 승하하면 대신들은 즉시 조정에 이를 알리고, 모든 관료들과 백성들은 상복을 입고 애도에 들어갔다.
- 조정의 대응: 왕이 서거한 후, 조정에서는 즉시 국장 절차를 준비하고, 다음 왕을 즉위시키는 작업을 함께 진행했다.
- 국가 애도 기간: 국장 기간 동안 전국적으로 애도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며, 궁궐과 관청에서는 각종 연회와 행사가 중지되었다.
2) 국장의 주요 절차
왕의 국장은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쳐 진행되었다.
① 발인(發靷): 왕의 시신을 옮기다
- 왕의 시신은 승하 후 5일에서 7일 동안 궁궐 내 빈전(殯殿)에 안치되었다.
- 이 기간 동안 왕의 시신을 보존하기 위해 특별한 방법으로 처리되었으며, 신하들과 왕족들이 빈전을 찾아 조문을 올렸다.
- 이후 발인식을 거쳐 왕의 시신을 임시로 안치할 ‘능침(陵寢)’으로 이동하였다.
② 국장 행렬(喪輿行列)
- 왕의 시신을 능으로 운구하는 행렬은 조선 왕조에서 가장 장엄한 의식 중 하나였다.
- 왕의 관은 호위 군사들과 대신들의 호송을 받으며, 수많은 백성이 이를 따라갔다.
- 왕이 지나가는 길은 깨끗이 정리되었으며, 백성들은 길가에 나와 머리를 숙이고 왕을 마지막으로 배웅했다.
③ 능 조성(陵造成)과 장례 의식
- 왕의 묘소인 왕릉(王陵)을 조성하는 과정은 매우 신중하게 이루어졌다.
- 풍수지리를 고려하여 왕릉의 위치를 선정했으며, 능의 구조는 왕실의 권위를 강조하는 형태로 배치되었다.
- 왕의 관이 능 안에 안치된 후, 정식으로 장례 의식을 거행하며 국장이 마무리되었다.
2. 조선 왕릉의 특징과 문화
조선 왕릉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철저한 유교적 가치관과 자연과의 조화를 고려한 설계가 특징이었다.
1) 왕릉의 입지 선정
- 조선 왕릉은 풍수지리(風水地理)를 철저히 고려하여 건립되었다.
- 왕릉은 산의 기운을 받고 하천과 조화를 이루는 곳에 위치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 왕릉 주변에는 숲이 조성되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형태를 띠었다.
2) 왕릉의 구조와 상징성
조선 왕릉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① 정자각(丁字閣)
- 왕릉에서 가장 중요한 제향 공간으로, 왕을 기리는 제사가 거행되던 장소이다.
- 왕릉을 방문하는 신하들이 이곳에서 절을 올리고 제사를 지냈다.
② 홍살문(紅箭門)
- 왕릉 입구에 세워진 붉은 문으로, 왕릉이 신성한 장소임을 의미하였다.
- 홍살문을 지나면 속세와 단절된 왕의 공간에 들어간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③ 봉분(封墳)과 석물(石物)
- 왕의 유해가 안치된 무덤 봉분은 크고 둥글게 조성되었으며, 그 주위에는 왕을 수호하는 석물들이 배치되었다.
- 능 앞에는 석양(石羊), 석호(石虎), 문인석(文人石)과 무인석(武人石)이 배치되어 왕의 위엄을 나타냈다.
3. 왕릉에서 이루어진 제례와 의식
왕이 사후에도 국가의 정신적 중심으로 남아있어야 했기 때문에, 왕릉에서는 정기적인 제사가 거행되었다.
1) 기신제(忌辰祭)
- 왕이 승하한 날을 기념하여 매년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었다.
- 기신제는 왕릉에서 거행되었으며, 왕실의 후손들이 왕을 기리는 중요한 행사였다.
2) 춘추향사(春秋享祀)
- 봄과 가을에 왕릉에서 거행된 제사로, 계절의 변화 속에서도 왕의 영혼을 기리는 의식이었다.
- 제사를 통해 왕실과 신하들은 조선 왕조의 지속성을 강조하였다.
3) 왕릉 방문과 국왕의 참배
- 현직 왕이 조상을 기리기 위해 왕릉을 방문하는 행사가 있었다.
- 왕릉 방문은 단순한 제사가 아니라, 왕실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중요한 상징적인 의미를 가졌다.
4. 결론: 조선 왕들의 마지막 길, 역사 속에서 살아남다
조선의 국장과 왕릉 문화는 단순한 장례 절차가 아니라, 왕권의 정통성을 유지하고 국가적 질서를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국장은 왕의 위엄을 유지하며 국가적 애도를 표하는 의식이었으며, 왕릉은 조선 왕조의 권위를 영구히 보존하는 신성한 공간이었다.
오늘날 조선의 왕릉들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조선 왕조의 철학과 문화적 가치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유산으로 남아 있다. 이는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조선 왕조의 정신과 역사적 유산이 고스란히 담긴 장소로, 후대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